하이텔과 천리안, 나우누리로 대변되는 과거 PC통신 시절부터 ‘그들만의 은어’ 는 늘 존재해 왔습니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인 광랜 설치가 마무리되고, 대한민국의 네티즌 수가 3000만명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느린 회선에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실어 보내기 위해서 각종 약어로 대변되는 통신어가 생겨났다면, 현재는 키보드 타이핑 시간의 감소와 신조어 창조의 즐거움을 이유로 더욱 빠른 속도로 새로운 말을 낳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이런 유행어들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계층적인 갈등이나 의사소통에 장애를 야기하는 요인이 됩니다. 비단 디지털 월드의 빠른 흐름에 따라가기 버거운 나이 드신 분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터넷 접속 시간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나날이 새롭게 갈고, 으깨고,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말들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죠. 그래서 오늘은 최근 각종 게시판에서 활발하기 사용되고 있는 따끈따끈한 인터넷 상용용어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넘사벽 :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의 약자
비교하고자 하는 대상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커다란 차이가 있을 때 사용.
예 ) 철제 관물대 >>> 넘사벽 >>> 나무 관물대
2. 이뭐병 :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의 약자
뭐라 할 말이 없을 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 사용.
예 ) "오늘 100분 토론 보셨어요?" -> "참가자 전원 이뭐병"
3. 흠좀무 :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네요" 의 약자
끔찍한 뉴스나 섬뜩한 글을 보고 덜덜 떠는 반응.
예 ) "이명박, 당선되면 하나님께 대한민국 봉헌 예정" -> "흠좀무"
4. 듣보잡 : "듣도 보도 못한 잡것" 의 약자
사용하고자 하는 대상의 인지도가 한없이 낮을 때 사용. 비하의 의미도 있음.
예 ) "토이? 그건 뭔 듣보잡이냐? 토익 동생이냐?"
5. 킹왕짱 : KING + 王 + 짱
재료만 봐도 의미를 알 수 있는 합성어. 호쾌한 발음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예 ) "허경영 총재님 당선되면 신혼부부한테 5000만원씩 준대요" -> "킹왕짱!"
6. 우왕ㅋ굳ㅋ
DC 인사이드의 이 만화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각종 패러디까지 등장한 감탄사. 의미상으로는 대충 "좋아 죽겠다" 정도에 해당하고 있음.
예 ) "색계 한국에서 무삭제 개봉 결정!!" -> "우왕ㅋ굳ㅋ"
7. 고고씽 : GOGO + 씽씽 (달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의성어)
피망 게임 "알투비트" 에서 유래.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달리는 형식의 게임인데, 현재는 "빨리 시작합시다" 나 "나 간다" 정도의 의미로 이용되는 중.
예 ) "가람이는 이제 30분만 있으면 집으로 고고씽이냐?"
8. 떡실신 : "떡이 될 정도로 두드려맞고 실신함" 을 의미
정확히 어디에서 처음 쓰였던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로 스포츠 경기에서 소위 말하는 콜드게임. 즉, A 선수가 압도적인 내용으로 B 선수를 눌러버렸을 경우 "B는 A한테 두드려맞고 떡실신당했다" 라고 표현한다. 비슷한 단어로 "(캐)관광" 이 있음. 이쪽 또한 마찬가지로 한쪽 선수가 다른 한쪽 선수에게 심하게 당할 때 "B가 A한테 강간당했다" 라고 이야기하던 것이 순화되어 발음상 비슷한 "관광" 으로 굳어진 것. 앞의 "캐" 는 강조효과.
9. 굽신굽신
간단히 말해 업드려 비는 모양. 주로 많은 리플이 달리기를 원할 때나, 특정 정보를 가르쳐달라고 할 때 사용.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효과가 있음.
예 ) "저기 세번째 사진 처자 누군지 아시는분 정보좀 굽신굽신..."
10. 뉴비 (Newbie)
영어 단어 그대로의 의미.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신참을 뜻함.
예 ) "원더갤 뉴비들은 원더걸스가 몇명인지도 모르냐?"
11. 안습 : "안구에 습기가 찬다" 의 약자
딱한 상황이나 인물을 보고 동정할 때 사용. 비슷한 단어로 "안폭" 이 있음. 이쪽은 "안구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는 의미. 혹은 "안구에 쓰나미가 인다" 라고도 함.
12. 열폭 : "열등감 폭발" 의 약자
상대방이 너무 잘나서 내가 너무 비참하다는 의미. 질투와 시기의 감정이 담겨 있음. 관련어로 "엄친아" 가 있는데, 이것은 "엄마친구아들" 의 약자로 웹툰 [골방환상곡] 에서 유래한 말. 엄마들이 늘 "내 친구 아들은 돈도 잘 벌고, 효도하고, 학점도 좋고..." 하는 식의 자랑에서 늘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을 가리킴.
"엄마친구아들" 의 관련어로 "엄더엄" 이 있는데, "엄마친구아들 오브 더 엄마친구아들" 의 약자. 모델은 이 친구.
13. 솔까말 :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의 약자
14. 여병추 : "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 의 약자
어이 없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을 비하할 때 사용. "이뭐병" 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5. 정줄놓 : "정신줄을 놓았다" 나 "정신줄을 놓은 사람" 의 약자
자신의 실수에 대한 반성이나 남의 실수에 대한 비하, 양쪽 모두 사용 가능.
16. 지못미 :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의 약자
온라인 성인동영상 유포 혐의로 구속되었던 "김본좌" 사건 때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네티즌들이 검은 리본 (▶▶) 과 함께 달았던 덧글인 "▶▶김본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가 시발점이 아닐까 싶음. 이후 선정성 짙은 사진을 올려서 방문객들에게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나 운영진들에게 밉보여 퇴출당하는 회원을 보고 사용하는 등 먼저 간 선구자(?)를 기리는 의미로 굳어짐. 좋아하는 대상이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봐도 이런 리플이 달려 있음.
17. 쩐다
의미상으로는 "잘한다" 나 "끝내준다" "죽여준다" 와 같음. 주로 칭찬하는 말에 사용되고, 형태상으로는 "쩌릿쩌릿하다" (너무 잘해서/멋져서 보고 있자니 몸에 전기가 오는 듯하다) 가 변형된 것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음. 존댓말로 바꾸면 "쩝니다" "쩌네요" "쩔어요".
18. 크리 : "크리티컬 (Critical)" 의 약자
온라인 게임 WOW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주요함. 강렬한 충격을 받았을 때 주로 사용. 다른 단어들과 합쳐지는 일이 잦다. 이럴 때는 앞에 오는 말을 강조.
예 ) 안습크리, 안폭크리, 열폭크리
19. 하악하악
시쳇말로 "뿅가 죽는다" 의 의미. 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으면 호흡이 가빠지고 동공이 확대되며 저런 숨소리를 내뿜게 된다고 함. 유사어로 "항가항가" 가 있는데, 이것은 "하악하악" 의 오타에서 비롯된 말로 의미는 차이가 없음.
예 ) "오늘 원더걸스 공연 어땠어요?" -> "하악하악 하악하악"
20. 움짤 : "움직이는 짤방" 의 약자
초창기 DC 인사이드에서는 글과 함께 그림을 올리지 않으면 게시물을 삭제하곤 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용자들이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을 덧붙여서 올렸던 것을 보고 그림을 "짤방 (짤림방지용)" 이라 부르게 되었다. "움짤" 은 주로 연예인 등의 재미있는 동작이나 반복재생하면 보기 민망해지는 동작을 캡쳐한 GIF 파일로, 관계어로 "혐짤 (혐오스러운 짤방)" , 유사어로 "플짤 (플래쉬로 만들어진 짤방)" 이 있다.
21. 빵상
TVN의 이 방송에서 유래.
창안하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외계어로 "안녕 인간들아" 란 의미를 갖는다고 함. 같은 방송에서 나온 말로 "끼랑깨랑 끼랑깨랑" 이나 "우리 존재 파이팅" 등이 있으며 그 오묘한 발음에 힘입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
22. 막장
"갈데까지 갔다" "이젠 꿈이고 희망이고 뭐고 없다" "누가 이기건 미래는 없다" 는 상태를 의미. 원래 광부들이 땅을 파다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나온다' 는 뜻으로 '막장이다' 란 말을 사용했다는게 유래라는 의견도 있고, 고추장과 된장을 오묘한 비율로 섞어서 찍어먹는 음식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음. 어느쪽이든 간에 그 폭넓은 활용도와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한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대중성으로 인해 대단한 인기를 구가 중.
유사어로 "답이 없다" 가 있음. 의미는 비슷. 스타리그 김도형 해설의 이 발언에서 유래.
예) "학점 2.0 이하면 막장 인정인가효?" "회창이가 돌아오다니 이번 선가 진짜 막장이다"
23. 캐, 닥
접두어로 활용되는 말들. "캐" 는 "개" 의 발음 강화판. 뒤에 오는 말의 의미와 비참함을 강화한다.
예) 캐안습, 캐막장, 캐발림, 캐병신 등
"닥" 은 "닥치고" 의 약자로 뒤에 오는 말을 무조건 해야 함을 의미.
예) 닥본사수, 닥힐, 닥붕, 닥버로우 등
24. 발리다
과거에는 생선 뼈를 발라낸다던가, 벽지를 바른다던가 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그 외에 "한심할 정도로 처절하게 당하다" 는 뜻이 추가되었음. "발리다" 가 기본형이고, 활용형으로 "발라버렸다 (능동)", "발렸다 (수동)", "캐발림 (명사형 + 강화)" 등 존재.
예) "어제 공부를 안해서 오늘 수학퀴즈는 또 발렸음. 뭐... 다들 발렸지만."
*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용어가 있으나 소위 '대세' 라고 부를 만한 것 외에 선정성 짙은 용어나 너무 매니악한 것들은 제외하였음.
어떠십니까. 최근 인기 만점의 유행어를 살펴보신 소감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새로운 언어가 태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말들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실 수도 있고, 유쾌함을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언어란 결국 변하는 것임을 전제에 놓고 생각해 본다면, 전뇌공간에서의 변화 또한 미래의 한국어가 태어나는 난산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말들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웹상에서의 언어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이해가 필요할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 도서관에서 이가람이었습니다.

